
록산느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칼린록시
“존나 완벽하네.” 다프네가 공들여 만든 머리 모양과 잘 빠진 아이라인이 망가지지 않게 록산느를 아주 조심스럽고 어색하게 안으며 말했다. “무도회에서 네가 왕관 받겠다.”
다프네와 아스테리아가 본인들의 머리 모양을 다시 만지는 데에 시간을 쓰는 사이에, 록시는 기숙사 공동 수첩을 꺼내 준비된 아이들의 목록을 살폈다. 이 중에서 파트너가 결정된다니. 분명히 끔찍한 무도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트리위저드 무도회에는 단순하고 구시대적인 규칙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학생들의 의견 없이 파트너 매칭해주기 시스템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도회 당일 마치 불의 잔에서 챔피언을 뽑는 것처럼 파트너를 뽑는 개념이었는데, 아무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이 규칙이 얼마나 구리냐면, 무려 그 덤스트랭 교장마저도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거렸을 정도였다.
그리고 더 마음에 안 드는 건 그 파트너가 무조건 *이성* 으로 뽑힌다는 점이었다. 다행히도 이런 구린 규칙 덕분에, 성별 수가 맞지 않아서 늦게 뽑은 학생들은 파트너 없이 무도회에 간다는 좋은 소식이 하나 있긴 했다.
록시는 남자 파트너를 배정받는 것보다는 혼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불의 잔에서 파트너를 뽑는 줄에 일부러 뒤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차례가 다가올 때마다 한 칸씩 뒤로 가며 양보하는 척을 했는데, 스네이프가 아주 마음에 안 드는 눈으로 쳐다본 것 빼고는 다 괜찮았다. 망할 슬리데린들, 눈치만 빨라서는.
‘험티 덤티!’ 록산느가 불의 잔에 다다랐을 때 불의 잔은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는 부글부글 끓은 뒤에 시퍼런 불길을 내뱉었다. 피융! ‘꽝’ 이라는 종이를 손으로 간신히 잡은 록시는 생애 처음으로, 당첨되지 않았다는 쪽지가 이렇게내 기쁠 수 없었다.
스텔라는 기뻤다. 일단 그녀가 드레스 대신 정장을 입겠다는 것에 대한 스네이프의 동의서가 떨어져서 기뻤고, 불의 잔 쪽지에서 꽝이 나와서 기뻤고, 무도회장에 혼자 온 여학생들이 많다는 것도 기뻤다.
지옥에서 떨어진 듯한 여성애자인 스텔라 칼린은 일부러 기숙사에서 가장 늦게 나가서 마지막 불의 잔 쪽지를 뽑았는데, 여학생이 열 몇 명 더 많은 트리위저드 세 학교의 상황상 당연히 꽝이었다. 스텔라는 본인이 그 열 몇 명에 들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홀의 테이블에 앉아있다 보니 챔피언들이 총총총 걸어 나왔다. 가장 처음은 세드릭 디고리와 초 챙이었고, 그 다음에는 플뢰르 델라쿠르, 덤스트랭의 이름 모를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해리 포터였는데 스텔라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여학생들을 고양이가 깃털 보듯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혼자 온 여학생들. 일부러 꽝을 뽑았다는 건 머리 돌아가는 속도가 느리지 않은 레즈비언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바로 부치다’ 라는 말을 온 몸으로 하는 스텔라처럼 포마드로 머리를 쌔끈빠끈하게 밀어 올리거나 슈트를 입겠다는 허가를 받은 학생은 없어 보였다. 정말 멍청한 헤테로섹슈얼이 혹시라도 실수로 꽝을 뽑은 거라면... 스텔라는 제대로 망한 것이었다.
그 순간, 이마에 레즈비언 딱지를 붙이고 앉아 있는 여학생이 보였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벨라 쿼터인 플뢰르 델라쿠르의 동생 같았다. -그럴 리도 없었지만- 호그와트 학생 같지는 않았다. 스텔라는 본인 머릿속에 있는 프랑스어를 생각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는 건 없었다. 제기랄! 호그와트도 외국어 강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록산느가 앞을 보는 척 하면서 혼자 온 여학생들을 둘러보는 중에 스텔라 칼린이 보였다. 스텔라 칼린은 호그와트에서 공공연하게 글래스 클로짓으로 알려져 있는 레즈비언이었고, 심지어 그녀는 슈트를 입고 있었고, 이건 계시와 같았다.
저 새끼는 내 거다! 록산느 속의 똘추레즈가 울부짖었다.
트리위저드 무도회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려면 한참 남았지만 록산느는 이미 반쯤 미쳐 있었다. 이런 걸 머글 말로 ‘치인다’ 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록시는 결정했다! 의자를 옮기기로! 그러려면 섭외해야 할 대상들이 적지 않았다. 칼린의 테이블로 조심스럽게 가려면 정말 *똘추* 처럼 의자를 들고 뛰는 것보단, 테이블 하나하나 조용히 가는 게 나았다. 스네이프 눈에 띄지 않으려면 티아라도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칼린은 그 보바통 여학생이 자리에 없는 걸 확인하고 아주 깜짝 놀랐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봐서 도망갔나?’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스텔라와 조금 더 가까운 테이블로 자리를 옮긴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도대체 뭐가 목표길래 저렇게 광인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가?
하지만 여학생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단지 액세서리를 덜 착용하고 있는 것만 달랐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눈에 띄었다- 얼굴이 액세서리보다 더 빛이 났다.
록시는 드레스에 제 발이 걸려 넘어지는 걸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드레스를 조금 구겨서 안쪽으로 넣었다. 스텔라 칼린한테 제대로 치여서 이런 미친 짓을 하는구나! 드레스는 녹턴 앨리에서 가장 비싼 가게의 것이었다...
칼린이 두리번거리는 박자에 최대한 맞춰 눈에 띄지 않게 조심조심 다음 테이블로 넘어갔다. 그리고 잠시 다른 곳을 보고 다시 앞을 보는 그 아주 작고 미세한 사이에 스텔라 칼린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쳤다!
마주쳤다고! 망할! 눈이! 존나! 시발! 마주! 쳤다!
록시는 패닉했다. 정확히는 완벽하게 세팅한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엄청나게 패닉한 표정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느낄 수 있었는데, 아주 존나 망했다.
스텔라는 굉장히 이상함을 느꼈다. 정확히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채를 부여잡는 보바통 여학생을 보았다.
록산느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고 싶었지만 머리 둘레가 생각보다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대안을 찾기로 결심했다. 칼린 앞에서 머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패닉한 표정을 짓다니! 본인이 한 행동이면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결국 다음 테이블에 의자를 끌어서 털썩 주저앉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자, 음악이 시작되었다.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라 그녀가 좋아하는 춤을 추기에는 좀 느렸지만 칼린이 일어나는 걸 보자 마자 록시도 일어났다. 머리가 개 같아도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다.
결국 긴 갈색 머리를 탈탈 털어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테리 부트에게 좀 욕을 먹긴 했다- 길게 늘어뜨리기로 마음 먹었다. 드레스도 다시 빼고, 구두도 고쳐 신었다. 원래는 좀 작은 키지만 이런 높은 구두를 신으면 권위를 쟁취할 수 있다고 다프네가 노래를 불렀기에 어쩔 수 없이 신은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구두는 존나 불편하고, 머리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칼린이 저기 있었다! 내가 한 10분 전에 제대로 치인 스텔라 칼린이!
그녀는 아름다운 보바통 여학생이 정말 긴 머리채를 탈탈 터는 모습을 보면서 마치 느리게 돌아가는 듯 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여학생은 벨라 쿼터인 게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람을 홀릴 수가 없다! 심지어 그녀는 혼자 왔었다. 스텔라는 여학생과 꼭 춤을 추겠다고 다짐했다. 아니면 기숙사 창문 열고 익사해서 죽어야지!
록시는 스텔라 칼린이 서 있는 곳으로 또각 또각 소리를 일부러 크게 내면서 걸어갔다. 내가 여기 있고 나는 존나 혼자 왔으며 내 머리는 존나 찰랑찰랑하다는 뜻이었다. 존나 나를 봐! 라는 뜻이기도 했다. 스텔라 칼린과 나는 춤을 추겠다! 하는 강력한 의사기도 했다.
“야.” 그녀는 칼린의 적당히 근육 붙은 팔을 톡 치면서 말했다. “혼자 왔어?” 그녀가 최대한 멋져 보이게 조작한 목소리긴 했지만.
그리고 스텔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록시는 쾌재를 불렀다. 속으로는 아주 크게 불렀고 겉으로는 아주 작게 허밍했다. 들리지 않았으면 했다.
보바통 여학생은- 아니! 이제 보바통 여학생이 아니었다! 가까이 와서야 깨달은 점은 그녀가 래번클로의 아웃사이더 -그래서 몰랐다- 7학년 록산느 호프만이라는 뜻이었다. 벨라 쿼터는 아니었고, 아름다운 보바통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뒷목 잡게 예쁘고 -머리를 푸니 더 그랬다- 영어도 하고, 심지어 똑똑한데, 그녀에게 춤 신청을 했다는 게 중요했다!
록산느는 노래에 맞춰서 발을 움직였다. 구두는 아팠지만 본인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게 스텔라 칼린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때마다 통증이 구두 마법을 건 것처럼 뾰로롱 사라졌다.
스텔라 칼린은 춤도 잘 췄다. 역시, 호그와트 대표 첫사랑인 건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헤테로섹슈얼이면서 핫한 여학생들보다 너드인 본인이, -스텔라 칼린은 본인을 몰랐을 테지만- 칼린을 낚아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머글 세계에는 속담이 하나 있다. 치이면 벌금을 받아내겠다고 구라를 쳐서라도 그 놈을 차지해라-*